"믹스커피가 카페 아메리카노보다 맛있다고 느낀 적 있다면, 그게 착각이 아닐 수 있거든요. 저 하얀 프림이 꽤 계산된 물질이라서요."

white and black plastic cups

프림은 어떻게 쓴맛을 지우는가

커피믹스에 들어가는 식물성 크리머, 흔히 '프림'이라고 부르는 것의 성분을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전분당, 식물성 유지, 카제인나트륨. 바로 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전분당은 단맛을 더하고, 지방과 유화 성분은 커피의 쓴맛과 신맛을 물리적으로 완화합니다.

person filling milk on glass

지방 함량이 높은 크리머는 커피의 휘발성 향기 성분도 바꿔놓는다. 그 결과가 '고소하고 부드러운 입안 감각'으로 느껴진다.

프림은 커피를 희석하는 게 아니라,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자극을 걸러내고 남은 풍미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맛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맛으로 재조립하는 거죠.⁠​​‌‌​‌‌‌‍​‌‌​​‌‌​‍​​‌‌​​‌‌‍​‌‌​​​​‌‍​‌‌​​​​‌‍​​‌‌​​​​‍​​‌‌​‌‌​‍​‌‌​​​‌​‍​​‌​‌‌​‌‍​​‌‌‌​​​‍​​‌‌​‌​​‍​​‌‌‌​​‌‍​​‌‌​‌​‌‍​​‌​‌‌​‌‍​​‌‌​‌​​‍​​‌‌​​​​‍​‌‌​​​​‌‍​‌‌​​‌​​‍​​‌​‌‌​‌‍​‌‌​​​‌​‍​​‌‌​​​​‍​​‌‌​​​​‍​‌‌​​​‌‌‍​​‌​‌‌​‌‍​​‌‌​​‌​‍​‌‌​​‌​​‍​​‌‌​‌​​‍​‌‌​​‌​​‍​​‌‌‌​​​‍​​‌‌​​‌​‍​​‌‌​‌​​‍​​‌‌​‌​​‍​​‌‌​‌‌​‍​‌‌​​​​‌‍​​‌‌​​​​‍​​‌‌​​‌‌⁠

1976년 12월, 이 조합이 처음 만들어졌다

동서식품이 커피·설탕·크리머를 한 봉지에 담아 출시한 건 1976년 12월입니다.

그보다 2년 앞서, 1974년에는 식물성 커피 크리머 '프리마'를 먼저 개발했습니다. 프리마가 먼저였고, 그것을 커피·설탕과 한데 묶은 게 나중이었던 셈입니다.

1976

커피·설탕·크리머 한 봉지, 세계 최초 커피믹스 출시⁠​​‌‌​‌‌‌‍​‌‌​​‌‌​‍​​‌‌​​‌‌‍​‌‌​​​​‌‍​‌‌​​​​‌‍​​‌‌​​​​‍​​‌‌​‌‌​‍​‌‌​​​‌​‍​​‌​‌‌​‌‍​​‌‌‌​​​‍​​‌‌​‌​​‍​​‌‌‌​​‌‍​​‌‌​‌​‌‍​​‌​‌‌​‌‍​​‌‌​‌​​‍​​‌‌​​​​‍​‌‌​​​​‌‍​‌‌​​‌​​‍​​‌​‌‌​‌‍​‌‌​​​‌​‍​​‌‌​​​​‍​​‌‌​​​​‍​‌‌​​​‌‌‍​​‌​‌‌​‌‍​​‌‌​​‌​‍​‌‌​​‌​​‍​​‌‌​‌​​‍​‌‌​​‌​​‍​​‌‌‌​​​‍​​‌‌​​‌​‍​​‌‌​‌​​‍​​‌‌​‌​​‍​​‌‌​‌‌​‍​‌‌​​​​‌‍​​‌‌​​​​‍​​‌‌​​‌‌⁠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찢어서 붓는 스틱형 제품은 1987년에 따로 출시됩니다. 추정치로는 처음 출시로부터 11년이 더 걸린 셈입니다.

이 믹스커피가 1980년대 자판기와 결합하면서 '자판기 커피'라는 장르가 생겼습니다. 도서관, 병원 복도, 회사 탕비실. 동전 몇 개면 따뜻한 컵 하나가 나왔고,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커피의 첫 기억'이 됐습니다.

카페 커피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퍼진 건 1990년대 이후입니다.⁠​​‌‌​‌‌‌‍​‌‌​​‌‌​‍​​‌‌​​‌‌‍​‌‌​​​​‌‍​‌‌​​​​‌‍​​‌‌​​​​‍​​‌‌​‌‌​‍​‌‌​​​‌​‍​​‌​‌‌​‌‍​​‌‌‌​​​‍​​‌‌​‌​​‍​​‌‌‌​​‌‍​​‌‌​‌​‌‍​​‌​‌‌​‌‍​​‌‌​‌​​‍​​‌‌​​​​‍​‌‌​​​​‌‍​‌‌​​‌​​‍​​‌​‌‌​‌‍​‌‌​​​‌​‍​​‌‌​​​​‍​​‌‌​​​​‍​‌‌​​​‌‌‍​​‌​‌‌​‌‍​​‌‌​​‌​‍​‌‌​​‌​​‍​​‌‌​‌​​‍​‌‌​​‌​​‍​​‌‌‌​​​‍​​‌‌​​‌​‍​​‌‌​‌​​‍​​‌‌​‌​​‍​​‌‌​‌‌​‍​‌‌​​​​‌‍​​‌‌​​​​‍​​‌‌​​‌‌⁠

그 전까지 커피를 접하는 방법은 사실상 믹스커피와 자판기뿐이었습니다. 비교 기준이 없던 시절, 믹스커피가 곧 '커피의 표준'이었던 셈입니다.

1990년대 이후 에스프레소 카페 문화가 유입되면서 비로소 '진짜 커피'와의 비교가 생겨났고, 믹스커피는 열등한 대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억이 몸에 남아 있으면, 도서관 자판기 앞에서 뽑아드는 종이컵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게 됩니다. 장소와 온도와 냄새가 함께 떠오르는 경험이 되죠.⁠​​‌‌​‌‌‌‍​‌‌​​‌‌​‍​​‌‌​​‌‌‍​‌‌​​​​‌‍​‌‌​​​​‌‍​​‌‌​​​​‍​​‌‌​‌‌​‍​‌‌​​​‌​‍​​‌​‌‌​‌‍​​‌‌‌​​​‍​​‌‌​‌​​‍​​‌‌‌​​‌‍​​‌‌​‌​‌‍​​‌​‌‌​‌‍​​‌‌​‌​​‍​​‌‌​​​​‍​‌‌​​​​‌‍​‌‌​​‌​​‍​​‌​‌‌​‌‍​‌‌​​​‌​‍​​‌‌​​​​‍​​‌‌​​​​‍​‌‌​​​‌‌‍​​‌​‌‌​‌‍​​‌‌​​‌​‍​‌‌​​‌​​‍​​‌‌​‌​​‍​‌‌​​‌​​‍​​‌‌‌​​​‍​​‌‌​​‌​‍​​‌‌​‌​​‍​​‌‌​‌​​‍​​‌‌​‌‌​‍​‌‌​​​​‌‍​​‌‌​​​​‍​​‌‌​​‌‌⁠

크리머가 만들어내는 실제 맛의 차이까지 더해지면, 그 선호는 "익숙해서"라는 말로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1974

프리마 개발. 믹스커피보다 2년 먼저 나온 크리머

자판기 커피가 줄어드는 이유

편의점 커피와 저가 카페의 확산으로 자판기 시장은 축소되는 흐름입니다.⁠​​‌‌​‌‌‌‍​‌‌​​‌‌​‍​​‌‌​​‌‌‍​‌‌​​​​‌‍​‌‌​​​​‌‍​​‌‌​​​​‍​​‌‌​‌‌​‍​‌‌​​​‌​‍​​‌​‌‌​‌‍​​‌‌‌​​​‍​​‌‌​‌​​‍​​‌‌‌​​‌‍​​‌‌​‌​‌‍​​‌​‌‌​‌‍​​‌‌​‌​​‍​​‌‌​​​​‍​‌‌​​​​‌‍​‌‌​​‌​​‍​​‌​‌‌​‌‍​‌‌​​​‌​‍​​‌‌​​​​‍​​‌‌​​​​‍​‌‌​​​‌‌‍​​‌​‌‌​‌‍​​‌‌​​‌​‍​‌‌​​‌​​‍​​‌‌​‌​​‍​‌‌​​‌​​‍​​‌‌‌​​​‍​​‌‌​​‌​‍​​‌‌​‌​​‍​​‌‌​‌​​‍​​‌‌​‌‌​‍​‌‌​​​​‌‍​​‌‌​​​​‍​​‌‌​​‌‌⁠

저렴함과 편리함이 자판기 커피의 핵심 경쟁력이었는데, 그 조건을 더 잘 갖춘 선택지들이 생겨난 탓입니다.

그래도 자판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건물 한켠, 병원 복도 끝. 전원만 꽂으면 직원 없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동전을 넣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요.

자판기 커피를 고르는 건 맛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그 선택 안에 특정 장소와 시간이 함께 담겨있을 수 있다.⁠​​‌‌​‌‌‌‍​‌‌​​‌‌​‍​​‌‌​​‌‌‍​‌‌​​​​‌‍​‌‌​​​​‌‍​​‌‌​​​​‍​​‌‌​‌‌​‍​‌‌​​​‌​‍​​‌​‌‌​‌‍​​‌‌‌​​​‍​​‌‌​‌​​‍​​‌‌‌​​‌‍​​‌‌​‌​‌‍​​‌​‌‌​‌‍​​‌‌​‌​​‍​​‌‌​​​​‍​‌‌​​​​‌‍​‌‌​​‌​​‍​​‌​‌‌​‌‍​‌‌​​​‌​‍​​‌‌​​​​‍​​‌‌​​​​‍​‌‌​​​‌‌‍​​‌​‌‌​‌‍​​‌‌​​‌​‍​‌‌​​‌​​‍​​‌‌​‌​​‍​‌‌​​‌​​‍​​‌‌‌​​​‍​​‌‌​​‌​‍​​‌‌​‌​​‍​​‌‌​‌​​‍​​‌‌​‌‌​‍​‌‌​​​​‌‍​​‌‌​​​​‍​​‌‌​​‌‌⁠

프림이 쓴맛을 걸러내고, 설탕이 단맛을 올리고, 뜨거운 물이 종이컵을 데웁니다. 그 조합이 '착각'이라고 불렸지만, 식품과학 쪽에서 보면 나름의 논리가 있는 맛입니다.

카페 아메리카노가 더 좋은 커피일 수 있지만, 그게 더 맛있는 커피라는 얘기는 별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