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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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어에 의심을 품어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다리라는 이름의 전제

'사다리'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다리는 고정돼 있어야 합니다. 발판이 견고하고, 올라갈수록 위에 닿을 수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지금 주택 가격이 대체로 '정상적인 수준'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오르면 닿을 수 있는 목표물이어야 하니까요.

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가, 사실은 불평등 구조를 가리고 있을 수 있다.⁠​​‌‌‌​​​‍​​‌‌‌​​​‍​‌‌​​‌​‌‍​​‌‌​‌‌‌‍​‌‌​​​​‌‍​​‌‌​​‌​‍​​‌‌​‌‌​‍​​‌‌​​​‌‍​​‌​‌‌​‌‍​‌‌​​​​‌‍​​‌‌​‌‌‌‍​​‌‌‌​​​‍​​‌‌​‌‌‌‍​​‌​‌‌​‌‍​​‌‌​‌​​‍​​‌‌​‌‌‌‍​​‌‌‌​​‌‍​​‌‌​​‌​‍​​‌​‌‌​‌‍​​‌‌‌​​​‍​​‌‌​‌​‌‍​​‌‌​‌‌​‍​‌‌​​​​‌‍​​‌​‌‌​‌‍​‌‌​​​‌​‍​‌‌​​​​‌‍​‌‌​​​​‌‍​‌‌​​​‌‌‍​‌‌​​‌‌​‍​​‌‌​‌​‌‍​‌‌​​​‌​‍​​‌‌​‌‌‌‍​​‌‌​‌​‌‍​‌‌​​​‌‌‍​​‌‌​‌​‌‍​​‌‌​‌‌​⁠

사다리라는 표현 자체가 현재의 집값과 자산 격차를 당연한 배경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불평등한 구조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어떻게 올라갈지만 묻게 만든다는 거죠.

한때는 실제로 작동했다

주거 사다리가 아예 허구였던 건 아닙니다.

전세는 한때 중산층이 자산을 키우는 발판이었습니다.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는 대신 월세 없이 살면서, 그 시간 동안 저축을 늘려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월세보다 전세보증금이 크고, 전세보증금보다 주택 가격이 크기 때문에, 단계를 오를수록 자산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person writing on white paper on brown wooden table

세 가지가 동시에 막혔다

지금은 다릅니다. 사다리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라, 각 단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월세입니다.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줄고 월세 전환이 빨라졌습니다. 월세 부담이 커지면 저축할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어요. 다음 단계로 올라갈 발판을 놓기 전에, 지금 발판을 유지하는 데만 돈이 나갑니다.

두 번째는 전세입니다. 전세대출·전세보증 이용 조건이 강화되면서, 전세를 거쳐 자가로 이동하려는 가구의 선택지가 좁아졌습니다. 중간 발판이 흔들리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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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세 번째는 대출입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상환 능력이 있어도 자금 조달이 막힐 수 있습니다. 소득은 있지만 아직 자산을 쌓지 못한 계층, 즉 사다리를 막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4.5%

청년층의 비아파트 자가 비율 (전체 가구 평균 20.5%)

비아파트 주택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첫 주택의 진입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청년층의 비아파트 자가 비율은 4.5%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체 가구 평균(20.5%)의 4분의 1 수준입니다. 대안이 있어도 청년층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이 달라졌다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구조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여기 있습니다.

2025년 기준 39세 이하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2억 1,950만 원으로, 10년 전보다 23.6% 늘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늘어난 수치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집값 상승폭과 비교하면 격차는 오히려 벌어진 셈입니다. 주택을 이미 보유한 계층이 가격 상승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구조니까요.

woman in blue long sleeve shirt standing on sidewalk during daytime

부모의 자산 규모에 따라 청년 가구 간 금융자산 격차가 5배 이상 벌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책금융과 대출로 올라가는 경로는 좁아지고, 부모의 자산 지원 여부가 첫 주택 구입 가능성을 좌우하는 상황이 되면, 사다리는 있지만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아니게 됩니다.

발판을 새로 놓으려는 시도들

서울시는 신혼부부를 위한 장기전세주택 '미리내집'을 2030년까지 1만 7,500가구 추가 공급하고 보증금 분할납부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공임대·장기임대·정책대출을 결합해 임차에서 자가로 가는 경로를 지원하는 방안들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다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무너진 단을 보완하는 방향입니다. 중간 발판을 공공이 대신 놓겠다는 거죠.⁠​​‌‌‌​​​‍​​‌‌‌​​​‍​‌‌​​‌​‌‍​​‌‌​‌‌‌‍​‌‌​​​​‌‍​​‌‌​​‌​‍​​‌‌​‌‌​‍​​‌‌​​​‌‍​​‌​‌‌​‌‍​‌‌​​​​‌‍​​‌‌​‌‌‌‍​​‌‌‌​​​‍​​‌‌​‌‌‌‍​​‌​‌‌​‌‍​​‌‌​‌​​‍​​‌‌​‌‌‌‍​​‌‌‌​​‌‍​​‌‌​​‌​‍​​‌​‌‌​‌‍​​‌‌‌​​​‍​​‌‌​‌​‌‍​​‌‌​‌‌​‍​‌‌​​​​‌‍​​‌​‌‌​‌‍​‌‌​​​‌​‍​‌‌​​​​‌‍​‌‌​​​​‌‍​‌‌​​​‌‌‍​‌‌​​‌‌​‍​​‌‌​‌​‌‍​‌‌​​​‌​‍​​‌‌​‌‌‌‍​​‌‌​‌​‌‍​‌‌​​​‌‌‍​​‌‌​‌​‌‍​​‌‌​‌‌​⁠

다만 이 보완책들이 얼마나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단어가 약속한 것과 지금의 거리

'주거 사다리'라는 말은 여전히 쓰입니다. 뉴스에서도, 정책 문서에서도요.

그 단어가 처음 자리 잡았을 때의 전제, 즉 소득을 모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구조는 지금과 다른 시장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월세 부담이 저축 여력을 줄이고, 대출 규제가 진입 문턱을 높이고, 부모 자산이 격차를 5배 이상 벌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조건이었습니다.⁠​​‌‌‌​​​‍​​‌‌‌​​​‍​‌‌​​‌​‌‍​​‌‌​‌‌‌‍​‌‌​​​​‌‍​​‌‌​​‌​‍​​‌‌​‌‌​‍​​‌‌​​​‌‍​​‌​‌‌​‌‍​‌‌​​​​‌‍​​‌‌​‌‌‌‍​​‌‌‌​​​‍​​‌‌​‌‌‌‍​​‌​‌‌​‌‍​​‌‌​‌​​‍​​‌‌​‌‌‌‍​​‌‌‌​​‌‍​​‌‌​​‌​‍​​‌​‌‌​‌‍​​‌‌‌​​​‍​​‌‌​‌​‌‍​​‌‌​‌‌​‍​‌‌​​​​‌‍​​‌​‌‌​‌‍​‌‌​​​‌​‍​‌‌​​​​‌‍​‌‌​​​​‌‍​‌‌​​​‌‌‍​‌‌​​‌‌​‍​​‌‌​‌​‌‍​‌‌​​​‌​‍​​‌‌​‌‌‌‍​​‌‌​‌​‌‍​‌‌​​​‌‌‍​​‌‌​‌​‌‍​​‌‌​‌‌​⁠

사다리는 사라진 게 아닙니다. 단어는 살아있습니다. 다만 그 단어가 약속하는 경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