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의 아담한 에노덴, 드라마 촬영지라서 낭만 가득한 관광열차인 줄 알았는데 혼잡률 146%를 기록할 만큼 주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동네 교통수단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에 나오며 더 많이 알려진 그 노선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일본 로케이션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소가 에노덴 연선입니다.
극락사역 주변 철길, 고료신사 입구 앞에 에노덴이 지나가는 풍경, 주택가 골목 옆 건널목. 두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이 건널목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에노덴이 드라마 팬들을 끌어들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슬램덩크 오프닝에도 나오는 가마쿠라코코마에역 건널목은 이미 중국과 대만 팬들 사이에서 먼저 유명해졌고, 지금도 그 건널목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줄이 끊이지 않습니다.

낭만 가득한 관광열차라는 이미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열차의 원래 정체는 따로 있었습니다
에노덴의 역사는 1902년 9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후지사와와 가타세 사이를 처음 잇기 시작했고, 지금의 노선 길이는 10.0km입니다. 처음부터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철도가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의 발이었어요.
지금도 그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사이를 매일 오가는 주민들, 학교 앞에서 내리는 학생들, 장 보고 돌아오는 어르신들. 드라마 속 배경과 똑같은 그 철길을 일상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혼잡률 146%. 숫자만 봐도 상황이 짐작됩니다.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역 바깥까지 대기줄이 이어져서, 매일 이 열차를 타야 하는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반복됩니다.
주민이 관광객보다 먼저 타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이 상황이 반복되자, 에노덴 운영사와 가마쿠라시는 이례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연선 주민 우선 입장' 제도입니다. 사전에 발급받은 주민 증명서를 들고 오면, 역 바깥의 긴 대기열을 건너뛰고 개찰구 안으로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예요. 관광객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순서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2026년 5월 황금연휴에는 가마쿠라역 서쪽 출구 개찰구에서 사흘간 이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같은 제도가 2025년에도 운영된 기록이 있는 걸 보면, 한 번의 시도로 끝난 게 아니라 매년 조금씩 다듬어가는 중인 셈입니다.

주민에게는 할인을, 관광객에게는 디지털을
2026년 8월부터는 '지모토쿠(지역 주민 할인)'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신용카드 같은 비접촉 결제 수단으로 평일 비혼잡 시간대에 에노덴을 이용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모토쿠5'라는 별도 승차권은 구매한 주의 평일 5일 동안 에노덴 전 구간을 이용할 수 있는 주민 전용 상품으로, 가격은 1,200엔입니다.
주말에는 쓸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관광객이 주말에 몰리는 패턴을 감안하면, 주민의 이동을 평일 중심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 쪽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1일 승차권 '노리오이군'의 디지털 버전을 내놓아서, 역 창구에 줄 서지 않고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하고 바로 탑승할 수 있도록 했어요. 대기 시간을 줄이면서 역 주변 혼잡도 함께 낮추려는 시도입니다.
주민에게는 할인과 우선 입장, 관광객에게는 디지털 편의. 같은 열차를 두고 이용 목적에 따라 서비스를 나누는 운영 방식이 2026년 기준으로 에노덴에서 실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차창도 바꾸고 있습니다
차량도 바뀌는 중입니다.
약 20년 만에 새로 도입한 신형 700형은 바다 쪽을 향해 앉을 수 있는 크로스 좌석과 넓어진 전면 유리가 특징이에요. 풍경을 즐기러 온 방문객뿐 아니라 매일 같은 구간을 오가는 주민에게도 조금 다른 승차 경험을 주겠다는 의도가 설계에 담겨 있습니다.
창밖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차창 환경 개선 실험도 별도로 진행됐습니다. 일반 창과 비교해 밝기와 색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었고, 정규 서비스로 이어졌는지는 추가 공지를 봐야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혼잡 문제는 에노덴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어요. 2023년에는 주민 우선 입장 실험과 함께 연선 주민을 위한 공유 자전거 실험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열차 안의 문제를 열차 밖에서 푸는 시도입니다.

드라마 명소가 된 동네 열차의 딜레마
에노덴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1902년부터 이어진 노선이 지금도 주택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커브를 돌면 갑자기 태평양이 펼쳐지고, 극락사 터널을 빠져나오면 울창한 숲이 기다립니다. 드라마가 이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건 당연한 선택이에요.
그 낭만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혼잡 속에서, 매일 이 열차로 출근하고 장을 보고 통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같이 달리고 있습니다.
연선 주민 우선 입장이 매년 검토를 거쳐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민 전용 할인 승차권이 2026년에 정식 서비스로 출발했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에노덴이 지금도 동네 열차라는 사실을 운영사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