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라면이 맛있는 이유가 라면 자체 때문만은 아니에요."

2024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한국상품박람회. 이 자리에서 한 중소기업의 기계가 800만 달러, 원화로 약 11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라면 조리기였어요.

기계가 뭘 파는지부터 봐야 해요
한강라면은 특정 제품명이 아니에요.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봉지라면을 사고, 전용 용기에 면과 스프를 넣고, 조리기 위에 올려 버튼을 누르면 물이 자동으로 나오고 3~4분 뒤에 라면이 완성되는, 그 일련의 경험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죠.

기계 자체는 생각보다 정교합니다. 용기에 붙은 바코드를 인식하면 라면 종류에 맞는 물의 양과 조리 시간이 자동으로 설정돼요. 국물라면은 4분, 볶음면은 별도 조건으로 구분돼요. 물을 직접 붓거나 끓는 상태를 지켜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계가 그걸 다 해요.
이 조리기를 만드는 회사는 인천 소재 중소기업 범일산업입니다. '하우스쿡'이라는 브랜드명도 함께 쓰이는데, 한강공원 편의점에 공급하던 이 기계가 어느 순간 해외 바이어들의 눈에 들어왔어요.
왜 지금 이 기계를 원하는 걸까요
한강공원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해외에 퍼졌습니다.
관광객들이 한강공원을 찾아와 직접 그 경험을 해보려 했고, '한강라면'은 서울 여행의 필수 코스처럼 알려졌어요. 음식이 아니라 콘텐츠가 된 셈이에요.
한강라면이 팔린 건 라면 맛이 아니라, 직접 끓이는 경험이었습니다.
빈 박람회에서 계약을 체결한 상대는 미국 기업 뷰티마스터였습니다. 미국500만 달러의 불가리아 바이어 거래, 300만 달러의 중국 바이어 거래, 100만 달러의 거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규모의 계약이 각각 성사됐어요.

미국 시장의 경우, 휴게소 등에 조리기를 공급할 예정이라는 내용도 함께 알려졌어요.
2024년 빈 박람회에서 범일산업 한강라면 조리기가 체결한 수출 계약 규모
2026년 1월에는 호주 진출 소식도 나왔어요. 한강공원 편의점 기계가 태평양을 건넌 셈입니다.
조리 과정 자체가 경험의 일부입니다
이 기계의 특징은 음식을 대신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직접 조리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에요.
용기에 면을 넣고 스프를 뿌리고,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기계에 올리고, 조리 중 젓가락으로 젓는 과정까지. 2026년 이용 안내 자료에 제시된 순서만 봐도 재료 세팅부터 젓가락질까지 네 단계가 이어져요.

이 과정이 한강 강변에서 이뤄진다는 게 핵심입니다. 조리가 끝나면 바로 강가에 앉아서 먹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이 동선 전체가 하나의 나들이 경험이 돼요.
잠원 한강공원 사례를 보면 라면 가격은 4,500원, 계란은 700원 별도로 안내됩니다. 계란을 넣는 타이밍이 별도 안내 항목으로 나올 만큼, 토핑 하나도 조리 경험의 일부로 다뤄져요.
여의도에서 시작해서 강 전체로
현재 한강라면 조리기는 여의도, 반포, 양화, 잠실, 잠원 한강공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확인돼 있습니다.
여의도 한강공원의 세븐일레븐 여의도한강1호점이 이용 장소로 자주 언급되고, 잠실에서는 이랜드 크루즈 선착장 옆 CU 편의점이 안내돼 있어요. 반포와 양화에도 세븐일레븐이 조리기를 운영 중이에요.
공원마다 구체적인 조작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기계는 바코드를 인식시키면 조리 조건이 자동으로 설정되고, 어떤 기계는 조리 시간과 온도를 이용자가 직접 선택해요. 같은 한강라면이지만 장소마다 미묘하게 다른 경험이에요.
한강이 없어도 한강라면은 가능할까요
범일산업의 상업용 안내 자료는 이 조리기의 활용처로 미국의 K-푸드 매장, 푸드코트, 캠퍼스, 델리 마켓을 제시합니다.
한강이 없는 공간에서도 '셀프로 끓여 먹는' 경험 자체를 상품화할 수 있다는 논리죠. 캐나다의 현지 사례에서도 같은 방식의 조리 과정이 소개되고 있어요.

기계 입장에서는 장소가 한강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정량의 물, 자동 타이머, 바코드 인식,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한강라면의 절반은 사라지는 셈이기도 합니다.
조리기가 수출 상품이 된 이유도, 한강이라는 장소가 만들어놓은 이미지 덕분입니다. 한강공원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이 먼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빈 박람회에서 계약서가 나왔을지는 모를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