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식 이름은 따로 있었다
조선 태조 5년인 1396년, 한양도성을 쌓으면서 서쪽에 작은 성문 하나가 함께 세워졌습니다.
처음 붙여진 이름은 소덕문(昭德門)이었습니다. 이후 1744년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에 소의문(昭義門)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공식 이름이 소의문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의문. 한양도성 4소문 중 서쪽에 자리한 문의 정식 이름입니다.
지금 아무도 그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더 쉬운 이름을 골랐다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 서남쪽 통행로를 맡은 이 문을 사람들은 그냥 '서소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소의문이라는 공식 명칭보다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별칭이 훨씬 실용적이었을 테니, 한양 주민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공식 이름은 소의문이었지만, 살아남은 이름은 서소문이었습니다.
문 밖은 어떤 공간이었나
서소문 밖으로 나가면 '서소문 밖 네거리'가 펼쳐졌습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성저십리 안에서 손꼽히는 상업 지역이었습니다. 만초천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형장이 물가에 자리 잡는 관행이 있었는데, 만초천이 흐르는 이 지역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장과 처형장이 같은 자리에 공존하던 공간이었습니다.
103명이 이곳을 지나갔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시작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박해 때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처형 장소로 기록에 등장합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된 천주교인 수
상업 지역이자 처형장이었던 이 자리가 천주교 역사에서는 순교지로 기억됩니다.

성문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았다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이 이 일대를 바꿔 놓았습니다. 성문과 주변 성곽이 철거됐고, 1927년에는 수산시장이 들어섰습니다.
500년 가까이 한양의 서쪽 출입을 맡던 문이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소의문 터에는 1985년에 세워진 표지석 하나가 옛 위치를 알리고 있습니다. 성문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건 문이 아니라, 문이 있었다는 안내판입니다.
이름은 살아 있습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이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고, 지명으로서 '서소문'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공식 이름도, 성문 자체도 사라졌지만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만은 남았습니다.
이름 하나가 품은 것들
서소문이라는 네 글자 안에는 꽤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태조 때 세워진 성문, 소덕문에서 소의문으로 바뀐 공식 명칭, 그 명칭을 제치고 살아남은 별칭, 장이 서던 네거리, 처형과 순교의 기억, 일제강점기의 철거, 그리고 표지석.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이 이름을 마주칠 때, 거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