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골목에서 호떡 한 장 사 들면, 대부분 "임오군란 때 화교들이 들어오면서 생긴 음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상식, 절반만 맞습니다.

뿌리는 훨씬 더 멀리
호떡의 원형은 한반도는커녕 중국도 아니에요.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지역의 밀가루 빵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왔고, 중국 문헌인 『야항선』에는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이 음식이 전해졌다는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겨울 골목 간식의 뿌리가 실크로드까지 닿아 있다.
2,000년 넘게 이동하고 변형되면서, 한국의 겨울 거리로 도착한 음식입니다.

1920년대 경성, 호떡 전성시대
한국에서 지금 같은 길거리 간식 형태로 완전히 자리잡은 건 1920년대로 알려져 있어요.
1924년 경성의 호떡집 수
같은 해 설렁탕집은 100곳이었습니다.
설렁탕보다 호떡집이 더 많았다는 건, 호떡이 특정 집단의 음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즐기던 간식이었다는 뜻이죠.
처음에는 화교가 운영하고 중국인이 주로 찾던 가게였지만, 1920년대를 지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까지 손님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겨울마다 줄 서는 그 호떡 가게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진 셈이에요.
왜 임오군란 이야기가 퍼졌을까
1882년 임오군란 직후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화교의 조선 이주와 상업 활동이 본격화됐습니다.
눈에 띄게 호떡집이 늘어난 시점이 이 무렵이었으니, "이때 처음 들어왔다"고 기억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대중화의 계기와 전래의 기원이 같은 사건처럼 뭉쳐서 전해진 겁니다.
실크로드에서 경성 골목까지
페르시아의 밀가루 빵이 실크로드를 건너고, 중국을 거쳐, 화교의 손에 이끌려 한반도로 들어오고, 1920년대 경성 골목에서 서민 간식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2,000년입니다.
그 사실은 지금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고, 호떡은 여전히 겨울마다 그 자리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