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갔다가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돌아온 적, 한 번쯤은 있잖아요. 사실 그게 처음부터 당연한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극장 근처 골목 식당이었고, 쇼핑은 영화와 전혀 다른 일정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CGV나 롯데시네마 안에서 팝콘을 넘어 스테이크를 먹고, 옷을 사고,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왔어요. 이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1998년, 테크노마트 10층에서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꼽히는 CGV 강변은 199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위치부터 달랐습니다. 강변 테크노마트, 그러니까 전자제품 쇼핑몰 건물 10층이었어요.
처음부터 영화관만 따로 서 있는 곳이 아니었던 거죠. 상영관만 11개였고, 순번대기표·무인발권기·자동응답 시스템처럼 당시로서는 생소한 편의시설도 함께 갖췄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극장+쇼핑+외식' 조합이 이 건물 하나에서 첫 그림을 그렸던 셈이에요.

극장은 처음부터 쇼핑몰 안에 있었다. 우리가 바뀐 게 아니라, 극장이 원래 그렇게 설계됐던 거다.
왜 하필 이 시기였을까요?
1998년은 IMF 외환위기 한복판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시기에 CJ엔터테인먼트·동양그룹·롯데그룹 같은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의 상영·배급 영역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위기 속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던 기업들에게, 해외에서 이미 성공한 멀티플렉스 모델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였던 겁니다.
한 건물에서 여러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면 관객에게는 선택권이 생기고, 운영자 입장에서는 특정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도 다른 상영작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손실을 분산하는 구조였죠.
주5일 근무제가 자리를 잡아가며 여가 시간이 늘어났던 것도 이 흐름과 맞물렸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생긴 사람들에게, 영화 한 편에 쇼핑과 외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은 꽤 설득력 있는 선택지였으니까요.

종로 극장가에 무슨 일이 생겼나
멀티플렉스가 퍼지면서 가장 먼저 흔들린 건 기존 단관극장들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영화관은 대부분 하나 혹은 많아야 서너 개의 상영관을 가진 형태였어요. 종로 일대에 모여 있던 극장가가 그 중심이었는데, 멀티플렉스는 관객을 강남이나 도시 외곽 쇼핑몰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극장가가 있던 자리의 상권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죠.
단성사의 이야기는 이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상징적인 장소였던 단성사는 2005년 총 10개관의 멀티플렉스로 재건축됐어요. 생존을 위한 변신이었지만, 그 결말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결국 최종 부도를 맞았거든요. 멀티플렉스로 바뀌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었는데, 막상 바뀌고 나서도 대형 체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버린 거예요.
모든 단관극장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단관극장이 전부 문을 닫은 건 아닙니다.
일부는 방향을 완전히 틀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안,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소극장들이 틈새를 파고들었어요.
고정 관객층을 갖추고, 교육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하면서 살아남은 경우였죠.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공간의 시작
멀티플렉스가 몰고 온 가장 큰 변화는 어쩌면 극장의 풍경 자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관이 문화 소비의 출발점이 되면서, 제작비 규모가 커지고 관객 수가 늘어나는 산업 전체의 구조가 함께 바뀌었어요. 상영관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고, 그게 한국 영화 제작의 규모를 키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요즘 멀티플렉스들이 스크린X나 4DX 같은 특별관, 단독 공연 콘텐츠를 잇달아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OTT와 경쟁하려면 집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극장이 직접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 출발이 강변 테크노마트 10층, 1998년의 11개관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오는 게 '당연한 하루'가 된 건, 누군가 처음으로 그 조합을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